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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져 버린 한국의 스포츠카 역사

  • 기사입력 2006.08.14 10:25
  • 기자명 이상원

우리나라에선 엔쵸 페라리나 재규어 XK같은 지붕없는 스포츠카는 다소 생소한 장르의 자동차다.
 
2인승이면서도 구입가격은 최고급 세단보다도 더 비싼 스포츠카가 좁은도로와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국내에서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산 스포츠카는 현대자동차의 티뷰론이나 투스카니 정도이다. 그나마 이들 차량도 스타일이나 성능면에서 정통 스포츠카와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더듬어 보면 우리나라에도 그럴듯한 스포츠카 역사가 존재한다. 쌍용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영국에서 들여와 만들었던 칼리스타나 엘란은 세계 어떤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스포츠카였지만 판매량이 극소수에 그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
 
우리나라 자동차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스포츠카는 영국서 건너온 칼리스타다. 칼리스타는 193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정통 영국식 로드스터모델로 클래식과 모던한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2인승 오픈카였다.
 
칼리스타는 특히, 경쾌한 주행성과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파워풀한 성능과 폭발적인 스피드로 당시 전 세계 자동차 매니아들이 한번 쯤은 갖고 싶어했던 명차중의 하나로 꼽혔다.
 
칼리스타의 탄생배경은 1971년 자동차 설계전문가이면서 카레이서겸 패션 디자이너였던 영국의 로버트 얀켈씨가 ‘팬더’라는 회사를 설립, 재규어의 스포츠카를 모방, 3.8리터급 6기통 재규어엔진을 탑재한 J72모델을 개발하면서 태동이 되기 시작했다.
 
얀켈씨가 이끄는 ‘팬더’는 1974년 부가티의 로얄을 모방한 고급살롱카 ‘드빌’을 출시하면서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얀켈씨는 이같은 여세를 몰아 1981년 1976년 개발된 리마를 기본으로 포드사의 4기통 2.8리터급 엔진을 탑재한 알루미늄 차체의 ‘칼리스타’를 마침내 탄생시켰다.
 
이후 칼리스타는 당시 최고 인기영화배우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미얀마 국왕 등 유명인들이 잇달아 구입하면서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고 이후 발전을 거듭, 4.2리터급, 5.3리터급 12기통 엔진이 탑재되면서 100km까지의 순간가속력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4.5초에 돌파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칼리스타라는 차명은 ‘작고 예쁘다’라는 뜻으로 리마를 작고 예쁘게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차는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칼리스타는 포드사의 4기통 1.6리터급, 2.9리터급 엔진을 탑재한 신모델을 연이어 내놔 히트를 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몰아친 제2차 석유파동으로 갑자기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고 칼리스타는 일일이 수작업 생산하는 비효율성에 한꺼번에 4개 신모델을 쏟아낸 것이 화근이 돼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됐다.
 
더 이상 회사를 지탱할 수 없게된 팬더사는 인수자 물색에 나섰고 당시 한국의 유명 밍크.가죽제품메이커 사주였던 김영철씨가 팬더사를 인수하게 됐다.
 
김씨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 팬더사를 다시 일으켜세우는데 성공했고 김씨는 1987년 팬더사를 스포츠카 전문메이커로 발전시키기로 결심, RV 전문메이커인 쌍용차에 인계를 했다.
 
쌍용차는 1988년 팬더사를 인수, 1990년부터 영국의 생산라인 일부를 한국으로 이전, 6기통 2.9리터급 포드엔진과 2.0DOHC엔진을 탑재, 칼리스타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동양인의 체형에 맞게 재구성하고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재질로 차체를 제작, 1992년부터 본격적인 국내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는 스포츠카 보급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구입가격도 3천만원대로 고가여서 3년만인 94년 판매부진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이 기간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칼리스타는 40여대에 불과했다. 이후 칼리스타는 김석원 전 쌍용차그룹회장이 설립을 계획했던 자동차박물관용으로 수 대가 쌍용차 본사에 보관돼 왔으나 쌍용차가 구 대우차로 넘어가면서 모두 고철값에 처분됐으며 현재 용인에 있는 삼성교통박물관에 옛날의 모습이 겨우 보존돼 오고 있다.
 
칼리스타의 맥을 이은 국산 스포츠카는 바로 기아자동차의 엘란이다. 스포츠카를 워낙 좋아했던 김선홍 전 기아자동차그룹회장이 지난 1996년 영국 로터스사로부터 들여온 엘란은 파격적인 스타일과 폭발적인 성능으로 한 때 국내 스포츠카 매니아들을 매료시켰다.
 
1989년 첫 생산이 이뤄진 엘란은 기아차가 생산라인과 제작기술을 국내로 들여와 조립한 반국산 스포츠카로 1.8리터급 기아차엔진에 하이캠을 올리고 앞범퍼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약간 손질했다.
 
엘란은 최고출력이 151마력에 최고속도가 220km로 당시로서는 따를 차가 없을 만큼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했다.
 
시판가격도 영국 로터스에서 생산한 오리지널 엘란 수입가격인 7천만원대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인 3천100만원에 판매, 2년동안 400여대가 판매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엘란 역시 시판 1997년부터 기아차 경영사정이 악화되면서 시판 2년만인 1998년 생산이 전면 중단되면서 한국의 스포츠카 역사는 결국 맥이 끊어지게 됐다.
 
스포츠카는 그 나라 자동차산업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카의 맥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중도에 끊어진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나 요즘에도 엘란동호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현대자동차가 스포츠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머지 않은 장래에 세계 수준의 스포츠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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