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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한 때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메이커였다.

  • 기사입력 2006.03.14 12:35
  • 기자명 이상원

쌍용자동차도 한 때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메이커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스포츠카 이름은 현대자동차의 티뷰론이나 투스카니정도이다. 과거에도 우리나라에는 기아 엘란이나 쌍용 칼리스타 등의 제대로된 스포츠카가 존재했었지만 극소수만 팔리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나라 자동차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스포츠카는 영국서 건너온 스포츠카 칼리스타다. 칼리스타는 193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정통 영국식 로더스터 모델로  클래식과 모던한 스타일이 조화를 이뤄 탄생한 2인승 오픈카였다.
 
이 차는 경쾌한 주행감과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파워풀한 엔진 스피드로 전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이 한번쯤은 갖고 싶어했던 명차중의 하나이다.
 
칼리스타는 1971년 자동차 설계전문가이면서 카레이서겸 패션 디자이너였던 영국의 로버트 얀켈씨가 팬더라는 회사를 설립, 재규어의 스포츠카를 모방, 3.8리터 6기통 재규어엔진을 탑재한 J72모델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이 시작된다.
 
이후 칼리스타는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미얀마국왕 등이 구입하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졌고 이후 더욱 발전을 거듭, 4.2리터급, 5.3리터급 12기통 엔진이 탑재되면서 100km까지의 순간가속력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4.5초에 돌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얀켈씨의 팬더는 1974년 부가티의 로얄을 모방한 고급 살롱형 '드빌'이 출시되면서 최고 호황을 누리게 되며 이후 1981년 1976년 개발된 리마를 기본으로 4기통 포드사의 2.8리터급 엔진이 탑재된 알루미늄 차체의 '칼리스타'를 개발하게 된다.
 
'칼리스타'라는 차명은 '작고 예쁘다'라는 뜻으로 리마를 작고 예쁘게 만든 것으로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칼리스타는 4기통 포드사의 1.6리터, 2.9리터급 엔진을 탑재한 모델을 연이어 내놔 히트를 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몰아친 제2차 석유파동으로 갑자기 판매가 줄어들었고 칼리스타는 일일이 수작업을 생산하는 비효율성과 한꺼번에 4개 모델을 쏟아낸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된다.
 
더이상 회사를 지탱할 수 없게된 팬더사는 인수자를 물색했고 당시 한국의 유명 밍크.가죽제품 메이커의 사주였던 김영철씨가 팬더사를 인수하게 됐다.
 
김씨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팬더사는 마침내 재기에 성공했고 김씨는 1987년 팬더사를 전문 스포츠카메이커로 발전시키기 위해 RV전문메이커인 쌍용차에 인계를 했다.
 
쌍용차는 1988년 팬더사를 인수, 영국의 기술진을 육성해 4기통 포드 1.4리터, 2.9리터급 엔진을 얹어 판매를 시작했으며 1990년에는 영국의 생산라인 일부를 한국으로 이전, 6기통 2.9리터급 포드엔진과 2.0DOHC엔진을 탑재, 칼리스타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동양인의 체형에  맞게 재구성하고 알루미늄 차체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차체로 제작, 1992년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는 스포츠카 보급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구입가격도 3천만원대로 고가여서 3년만인 94년 판매를 중단했다.
 
이 기간동안 칼리스타는 총 40여대가 판매됐다. 이후 쌍용차는 김석원 전 쌍용차회장이 자동차박물관 설립을 위해 본사에 수 대의 칼리스타를 보관해 왔으나 쌍용차가 대우차로 넘어가면서 모두 고철값에 처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칼리스타는 용인에 있는 삼성교통박물관에서 옛날의 모습이 겨우 보존돼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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