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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뒤늦게 "주민번호 수집 금지"

  • 기사입력 2006.02.17 16:52
  • 기자명 변금주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명의 도용 피해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6만 명을 넘어서 이 분야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게임 제작사인 엔씨소프트는 16일 오후 7시까지 4만6400여 명의 피해신고를 접수해 지난 나흘간 모두 5만9921명이 명의를 도용당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5만3000명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1000억원어치의 아이템을 유통한 중국인 조직 사건보다 이번 피해 규모가 더 큰 것이다. 가입 여부를 조회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피해 규모가 6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실시 된다.



엔씨소프트가 이날부터 도용신고 페이지(https://secure.ncsoft.co.kr/lineage/default.asp)를 열고 휴대전화를 통한 본인인증만으로 도용 계정을 해지할 수 있게 하면서 피해 신고가 급증했다. 이전에는 피해자들이 주민등록증 사본을 보내야 삭제가 가능했다. 이 회사는 다음주부터 새로 회원으로 가입할 때 휴대전화 인증 과정을 거치도록 해 본인확인 절차를 강화한다.

 
■ 문제 알면서도 방치=전문가들은 정부와 게임 업계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 화근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번호 유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정보 침해 신고 1만8206건 가운데 주민번호 도용과 관련된 게 54%였다. 또 중국이나 대만의 게이머들이 한국 게임에 접속하려고 유출된 주민번호를 공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중국의 '리니지 공장'에서는 수백 대의 컴퓨터를 이용해 아이템과 사이버 머니를 모아 한국 게이머들에게 현금을 받고 판매했다.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아이템 시장에서 리니지 시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상이다. 본지 2월 15일자 14면

 
리니지 외에도 주민번호 도용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개인신용정보 사이트 '이지스'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신고된 명의 도용 건수는 총 7만2000여 건에 달한다. NHN의 게임포털 '한게임'이 257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인터넷신문 '이런 뉴스'(2032건), CJ인터넷의 게임포털 '넷마블'(1861건)이 뒤를 이었다.

 
리니지처럼 조직적으로 명의를 도용하지는 않는다 해도 주민번호 도용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동통신회사.쇼핑몰 등을 통해 새 나간 주민번호가 1000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국민 네 명당 한 명꼴로 개인정보가 돌아다니는 셈이다.

 
■ 뒤늦은 대책 발표=정보통신부는 전자상거래와 같이 법으로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의 주민번호 수집을 아예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16일 밝혔다.

 
이와 함께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본인확인 수단을 보급하고 올해 안에 게임사이트 등 약 10만 개 웹사이트에 대해 주민번호 노출 점검을 하기로 했다.

 
이는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에 대한 대규모 명의 도용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이름과 주민번호만을 본인 확인 수단으로 삼은 때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주민번호를 대신할 본인확인 수단으로 가상 주민번호,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번호 등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부정 사용하다 적발되면 재물 등 부당이익을 노린 경우가 아니라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고 밝혔다. 문화관광부는 아이템 현금 거래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이를 규제할 법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에 적극적 개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날 "주민번호는 평생 변하지 않는 고유 번호로 개인정보를 많이 담았을 뿐 아니라 한번 유출되면 피해를 복구하기 힘든데도 정부는 몇 년째 개선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명확인 시스템을 전면 교체하고 2년째 국회에서 잠자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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