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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자동차] ② 세계 5위권 진입한 車산업, 고속성장의 그림자는?

국가, 자동차 산업 그리고 소비자

  • 기사입력 2015.11.03 08:48
  • 최종수정 2015.11.06 09:31
  • 기자명 이다일 기자

[오토데일리 이다일 기자] 우리나라에 자동차 관련 법률이 제정된 지 100년. 세계 4위권으로 도약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오토데일리가 돌아봅니다. 강산이 열 번 변할 동안 자동차 산업도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만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 혹여 놓친 것은 없는지, 앞으로 개선할 것은 없는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디인지 기획연재를 통해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자. 자동차산업만큼 인수합병이 활발한 산업이 있었을까. 자동차가 탄생한 유럽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600년대 마차를 만들던 코치빌더부터 가장 최근의 현대적 자동차 회사의 인수합병까지 자동차의 역사는 인수합병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인수합병의 자동차 산업사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44년 기아산업의 모태였던 경성정공을 시작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탄생한 현대자동차, 아시아자동차, 새나라자동차, 신진자동차,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 등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비교적 최근인 1998년에도 대우자동차를 쌍용차가 인수했었고 다시 2002년 지엠이 인수했다. 1998년 시작한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삼성자동차로 다시 태어난다.

▲ 국내 자동차 산업의 창업, 인수, 합병 과정 /2014 한국의자동차산업

 해외에서도 우리가 잘 아는 자동차 브랜드는 이렇게 합병을 통해 탄생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아우디다. 4개 브랜드가 합병을 통해 아우토유니온을 형성했고 현재의 4개의 원이 상징하는 것이 각각의 회사들이다. 로고에 7개의 별을 넣은 일본차 스바루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 직후 군수산업에 참가했던 회사가 강제 해산됐고 이후 생존을 위해 뭉친 회사가 스바루다.

▲ 아우토유니온 포스터

 자동차의 합병은 경제적인 논리가 우선이겠지만 국가가 나서서 산업 육성을 위해 주도한 사례도 많다. 우리나라도 승용차, 승합차, 트럭 등을 구분해 회사를 나눠놓은 ‘자동차합리화법’이 5공화국에서 있었고 국민들의 저축을 바탕으로 차를 만들겠다는 폭스바겐이 2차 대전 이후 주정부의 주도로 생겨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의 합병은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해 필수요소였다. 가까운 사례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합병이다. 현재 세계 5위에 랭크된 것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생산량을 합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르노자동차도 일본의 닛산자동차를 합해 4위에 올랐다.

▲ 국가별 자동차 생산량 /2014 한국의자동차산업

 자동차 업계가 규모의 경제를 갖추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값을 낮춰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판매 규모를 갖춰야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다. 현대자동차의 김충호 사장은 최근 고객들과의 대화의 장 ‘마음드림’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자동차가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서 값을 낮출 수 있게 됐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도 전략적 가격을 책정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경쟁업체와 동등한 혹은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국가경쟁력과 자동차산업

 1990년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포터 교수는 생산력, 수요조건, 경영여건, 연관 산업을 주 축으로 하는 ‘국가 경쟁우위의 결정요인’이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이른바 ‘포터의 국가 다이아몬드 모델’이다. 특정 지역에서 글로벌 산업이 탄생하는 배경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도 같은 이론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요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늘어났고 1975년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자체 생산하면서 생산능력도 갖췄다. 또, 제철, 섬유, 석유화학 등 연관 산업이 함께 발전했고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가 경제를 이끌어갈 산업으로 자동차, 반도체 등을 꼽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독일, 미국, 일본 등이 1900년대 초반부터 차를 생산하던 기술을 불과 20~30년 만에 따라잡았고 현재는 동등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독일이나 미국,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더 빨리 공장을 늘려 생산량이 늘어났고 군수용품 생산을 위해 기술을 확보했다. 독일은 1900년대 초반부터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지만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퍼디난드 포르쉐 박사처럼 자동차 엔지니어가 독일군의 탱크를 만드는 일도 있었다. 미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포드는 이미 전쟁 전에 ‘모델 T’를 대량생산하기도 했다. 이후 자동차 산업의 노하우가 군수물자 생산에도 적용됐다. 독일과 일본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 역시 전쟁을 통해 기반을 닦았다.

 이처럼 자동차산업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혹은 주변 상황에 의해 발전했다. 이같은 성장방식은 최근에도 중국 정부의 보호아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자동차 산업의 특수성과 글로벌 경쟁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대다수가 이렇게 정부의 지원 혹은 주도하에 성장하다보니 특수성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아자동차가 군용차를 만들어 납품했고 저가의 대중차가 필요한 시점에 현대차는 포니를 개발했다. 대우자동차는 우리나라에 경차를 도입하려는 정부 정책에 맞춰 티코, 다마스와 같은 차를 개발했고 건설 붐이 일어날 때에는 레미콘과 같은 특수차를 개발했다. 국가 정책에 따라 LPG 택시를 만들고 버스를 만들었고 국가는 여기에 맞춰 도로를 건설하고 도시계획을 마련했다.

 최근의 자동차 산업은 좀 더 복잡해졌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대략 1/3을 내수시장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수출하는 형태다. 또, 3만여 개의 부품이 조화를 이루는 최근의 자동차는 연관 산업의 발전도 함께 묶여있다.

▲ 자동차 산업의 연관 구조 /2014 한국의자동차산업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1대를 만드는데는 선철, 보통강, 특수강, 유리, 고무, 세라믹, 섬유, 피혁, 종이, 동, 알루미늄, 귀금속, 도료, 전자부품 등 대부분의 제조업을 총망라할 정도로 많은 관련 산업이 필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자동차산업에 직, 간접적으로 고용된 인원은 약 182만6000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고용 인원의 7.3%다. 자동차와 부품의 제조에만 33만7000명이 고용됐고 소재의 생산과 자동차 판매, 정비, 운수업이나 임대업, 주차장업까지 다양한 산업 연관성을 갖고 있다.

■ 한국의 자동차 산업

 지난 반세기 경제 발전을 위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필요성에 의해 발전한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 정상권에 올라섰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업체는 총 5곳이며 글로벌 기업의 인수합병 여파로 한국인이 경영권을 갖고 있는 회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단 두 곳이다. 이 회사도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묶여있어 사실상 우리나라의 자동차 회사는 한 곳이다. 한국지엠은 미국 제너럴모터스의 글로벌정책을 따르고 있고 쌍용자동차는 인도 마힌드라가 모회사다. 르노삼성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속해있다.

 각 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는 현대자동차다. 89조원대다. 기아차는 47조원, 한국지엠이 12조원, 쌍용차가 3조3270억원, 르노삼성이 3조9740억원이다. 고용인원도 현대차가 6만4956명, 기아차가 3만4112명, 한국지엠 1만5224명, 상용이 4831명, 르노삼성이 4385명이다.

▲ 국내 자동차 업체 현황/ 2014 한국의자동차산업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능력은 승용차와 상용차를 합해 2014년 총 468만대로 세계 5위권이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9000만대 정도고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생산량이 740만대 정도니 우리나라 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 가운데는 유일하게 현대기아차만 해외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살펴보면 자동차 생산량은 중국이 2370만대, 미국이 1166만대, 일본이 977만대, 독일이 605만대다.

■ 경제 기여도 높지만 유독 ‘온라인 여론’ 안 좋은 한국車

 1950년 이후 반세기 만에 세계 자동차 산업 5위까지 올라간 한국. 유일하게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며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80%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현대기아자동차. 굴곡의 세월을 이겨내고 신차 티볼리로 재기하는 쌍용차. 국내 생산량은 점차 줄어들고 경영진도 외국인으로 바뀐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자동차.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다. 여기에 최근에는 연간 20만대 규모의 수입자동차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차를 접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소식이 전해지고 유명 모터쇼는 생중계된다. 수백 개에 이르는 자동차 관련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소식을 전달한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는 차종마다 수십 개의 카페가 개설됐고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동차의 결함을 포함한 장단점이 공유된다. 도로를 달리다보면 뒷유리에 ‘***Love’ 같은 차종별 동호회 스티커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국산차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다.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살펴보면 주로 국산차와 수출용차간에 차별이나 가격 경쟁력 등을 꼬집는 내용이 쉽게 눈에 띈다.

▲ 현대자동차가 수출형과 내수형의 안전성 논란이 일자 인천 송도에서 두 차의 공개 충돌테스트를 진행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국산차에 대한 소비자의 싸늘한 시선의 원인을 ‘고속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소통의 부재’로 보고 있다. 지난 달 현대차 김충호 사장은 “현대자동차가 그간 고속성장을 이루다보니 국내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점이 있다”며 “앞으로 소통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안전과 품질 관련 부품과 옵션은 상대적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산차 관련 칭찬의 글 뒤에는 이른바 ‘이유 없는 비난’도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현대기아차 1000만 안티’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온라인에서 이어지는 비판의 목소리는 우리나라의 특징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한 수입차 업체 임원은 “한국은 신차를 테스트하기 좋은 조건”이라며 “까다로운 품질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빠르고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에는 현대기아차가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시장 진입이 어려운 곳이지만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관심을 갖는 곳이다”라고 덧붙였다.

■ 온라인 소비자 ‘마음’ 잡으라..車업계 안간힘

 전 세계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한국 소비자를 위해 자동차 업계는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커뮤니케이션실’을 신설하고 온라인 게시판, 카페, 동호회를 중심으로 고객만족에 나섰다. 한국지엠도 블로거를 중심으로 하던 마케팅을 ‘네티즌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확대했다. 이른바 전통적인 신문, 방송, 광고매체를 통한 홍보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품성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급발진, 화재, 품질불량 등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빨리, 뚜렷하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를 포함한 국내 자동차 업계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기아차는 쏘렌토에서 독특한 소음이 발생하자 곧바로 원인 파악에 나섰다. 해당 차종의 동호회를 중심으로 문제 사례를 모았고 연구진과 함께 분석했다. 중간 중간 내용은 국내커뮤니케이션실을 통해 소비자 모임에 직접 전달했다. 보도자료나 언론을 통해 ‘문제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던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한국지엠도 소비자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차 발표회에 언론 매체와 동등한 조건에서 블로거 등의 소위 ‘일반인’과 ‘소비자’를 초청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언론기사와 같은 시점에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갔다. 차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의 목소리도 여과 없이 전달됐다.

- 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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