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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가스스캔들] [기자수첩] 8백만대 디젤차가 달리는 한국에서의 폭스바겐 사태 관전법

  • 기사입력 2015.10.08 10:17
  • 최종수정 2015.10.23 10:55
  • 기자명 이다일 기자

[오토데일리 이다일 기자] 천주교의 묵주기도 가운데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며...’

▲ 디젤 엔진의 발명가 루돌프 디젤

 거짓말을 했던 폭스바겐이 지옥불에 빠졌다. 불과 20일 만에 주가는 5년 전 수준으로 폭락했고 ‘폭스바겐’은 부정한 디젤차의 브랜드로 전락했다. 가솔린 엔진 기준의 강력한 미국 캘리포니아 환경규제를 속여가며 디젤차를 팔아 보려던 계획의 말로다.

*디젤의 아마겟돈 전쟁

 기도문에는 모든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어 달라고 했건만 자동차 업계의 사정은 다르다. 모두 지옥불에 빠질 위기다. 지옥문이 열려 디젤의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까 두렵다.

 지옥불은 확산됐다. ‘속임수를 쓴 폭스바겐’이 불씨였다면 ‘친환경이 아닌 디젤엔진’이 기름이 될 상황이다. 실험실의 성적에만 몰두했던 전 세계 디젤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실제 주행에서 그리고 출시한 지 몇 년 지난 차에서 나오는 엄청난 배출가스가 드러날 위기다. 먼저 지옥불에 떨어진 폭스바겐이 보내는 첫 번째 초청장이다.

 지옥문은 열렸다. 아무도 깨끗할 수 없는 곳이다. 디젤차를 친환경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아이러니인 상황, 더 나아가서는 자동차를 타는 자체가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상황을 이제 전 세계인이 직시한다. 다리가 무너진 뒤에 강을 건너기 무서웠고 백화점이 무너진 후에는 큰 건물에 가기 무서웠던 사람들에게 폭스바겐 사태로 도로를 달리는 디젤차는 흉물이 됐다.

* “나를 지옥문으로 끌어들이지 마”

 기도는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돌보소서’로 끝난다. ‘구원을 비는 기도’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돌봐야 할 영혼들이 많은 상황이 기회다. 스스로 지옥을 탈출하기에 바쁘다.

 디젤차의 배출가스에 대해 우리 정부가 나서고 국회가 나섰다. 언론은 연일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실험실에서 나온 배출가스와 실제 도로를 달릴 때 나오는 배출가스를 비교실험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점차 확산된다. 이런 차를 그동안 어떻게 타고 다녔나 싶다. 일부 해외 연구소에서 나온 실제 도로 측정 결과는 더 자극적이다. 판매중인 대부분의 차가 부적합하다. 기준은 실험실인데 결과는 현실이다. 더 자극적이다. 그래서 지옥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디젤차를 판매하는 현대차가 지옥문으로 7일 초대받았다. 국회 교통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정성호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현대차의 반응은 빨랐다. 즉각 반박 자료를 내고 배출가스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미 BMW도 지옥으로의 초대장을 받았다. 독일의 한 잡지가 BMW X3가 실주행 실험에서 배출가스 기준을 크게 웃돌았다고 밝혔다. 주가가 폭락하고 언론이 들썩였다. BMW 역시 즉각 해명에 나섰고 해당 매체는 하루 만에 주장을 철회했다.

* 능동적 대응 나선 디젤 차 업계 

 사태가 심상치 않은지 지옥으로 향하는 초대장이 올까 두렵기 때문인지 자동차 업계는 능동적 대응을 시작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유로6 엔진을 도입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출시가 늦어질지언정 배출가스 문제로 지옥 초대장을 받긴 싫다는 뜻이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폭스바겐과 함께 디젤차를 판매했던 메르세데스-벤츠는 ‘삼각별의 천사’라고 주장한다. 지옥과 관련 없다는 뜻이다. 초기부터 요소수를 사용해 폭스바겐과 전혀 다른 엔진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다임러 그룹의 디젤 엔진을 쓰는 벤츠, 닛산, 인피니티에서도 동일하다. 이들은 조만간 ‘깨끗한 디젤 엔진’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폭스바겐이 디젤 지옥에 빠졌을 때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는 취지다.

 가솔린,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판매하며 심심한 실적을 기록했던 브랜드들은 이번 사태가 반갑다. 하이브리드를 주력으로 삼은 토요타는 이번 달, 국내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할인폭도 늘리고 시승도 늘렸다. 대형 가솔린차를 파는 포드 역시 할인을 앞세우며 공략에 나섰다.

 가솔린, 하이브리드, 전기차, 디젤엔진에 수소차까지 발을 넓혔던 현대기아차는 여러 장의 카드를 두고 고르고 있다. 최근 내놓은 아반떼를 포함해 SUV를 중심으로 디젤을 팔아야하지만 사태 추이를 관찰하고 있다. 지옥문의 방향을 확인하고 반대로 달릴 계획이다.

* 상대평가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주목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상대평가라는 문제다. ‘배출가스 몇 배 검출’이라는 결과는 우리가 만든 기준에 따른 것이다. 사실 미국이, 유럽이 만든 기준이다. 상대평가는 누구라도 부적격자로 만들 수 있다. 자극적인 소재로 이만큼 좋은 꺼리는 없다. 이를 두고 유럽차 CEO들은 ‘미국의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폭스바겐은 거짓말의 대가를 이제 치르기 시작했다. 주가 폭락이 그 시작이다. 앞으로 천문학적인 보상과 소송을 감당해야한다. 공장이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는 벌써 고용안정이 최대 이슈다. 모터사이클부터 트럭, 수퍼카까지 거느리던 폭스바겐그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우리는 폭스바겐의 자극에 몰입하면 안 된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디젤차의 배출가스는 개선의 대상이지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규제를 만들고 지키면 된다.

 배출가스 논란에 자동차 업계는 마치 쑤셔놓은 벌집 같다. 상시적으로 했던 배출가스 사후검증도 끝나지 않은 실험 결과를 슬쩍 흘려보낸다. 그때마다 업계는 발칵 뒤집힌다. 사실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폭스바겐과 같은 ‘속임수 기업’ 오명을 얻을까 두려워서다.

 자극적인 논란은 미래가 없다. 자극적인 소재는 뒤가 짧다. 몇 달 뒤면 잊힌다. 그리고 잊히길 기다리는 누군가도 있다. 이제는 자극에 몰입할 때가 아니다. 위정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793만대의 디젤차가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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