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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국방부 출신 프로보사장은 진짜 명의(名醫)였나?

  • 기사입력 2016.03.25 23:05
  • 최종수정 2016.03.28 13:57
  • 기자명 이상원 기자
4년7개월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는 프랑수아 프로보사장

[오토데일리 이상원기자] 르노삼성자동차의 프랑수아 프로보사장이 25일 서울 구로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호텔에서 이임(離任)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프로보 사장은 지난 2011년 9월 르노삼성 사장에 취임, 4년7개 월 간의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4월부터 르노 중국법인 총괄 및 동펑르노자동차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날 르노삼성차 박동훈사장 내정자는 2년 반 동안 같이 일 해 온 프로보사장은 대단한 열정을 가진 존경할 만한 경영자로서 말 그대로 명의(名醫)였다고 평가했다.

명의란 평가는 다 죽어가던 르노삼성차를 살려내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프로보사장의 업적을 표현한 듯하다.

프로보사장이 르노삼성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1년 9월이다. 르노삼성은 2009년 800억원에 달하던 순이익이 2010년 361억 원으로 줄어드는 등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조직내부도 각종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취임 첫 해인 2011년 24만4천 대를 판매하고도 무려 2,2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르노삼은 대대적인 수술이 절박했고 결국 프랑스 국방부 보좌관 출신으로 러시아 법인을 이끌던 프로보사장을 긴급 투입했다.

2012년 르노삼성의 판매량은 15만6천 대로 떨어졌고 경영수지는 전년대비 약간 개선되긴 했으나 1,700억 원의 적자가 이어졌다.

2013년에는 판매량이 13만2천 대로 최악을 기록했으나 440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고 2014년에는 15만3천대로 회복되면서 흑자 폭이 15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2011년에 육박하는 21만2천까지 판매량이 늘어났고 사상 최대인 3천억 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약 5년에 걸친 리바이벌(회생) 플랜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2013년 최악의 판매량을 기록하고도 흑자로 전환된 데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수반됐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의 부산공장 근무인력은 2011년 3,400여 명에서 2012년 2,300여 명, 2015년 2,380여명으로 줄었고 전체 인력도 2012년 4,570여 명에서 2015년에는 4,190여 명으로 줄었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노조와의 마찰이 이어졌고 2014년에는 사상 초유의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국면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와의 끈질긴 대화 끝에 르노삼성은 지난해 7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대타협의 핵심은 호봉제 폐지와 임금 피크제 실시, 그리고 통상임금 문제 해결이다. 현재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도입하고 있는 호봉제는 임금을 동결하더라도 매년 2.5%씩 올라가기 때문에 경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르노삼성 경영진은 노조 집행부는 물론,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생산성 향상만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 이는 고용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 결국 전 직원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프로보사장은 한국에 근무하면서 깨달은 성공의 비결은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과 직원 들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자동차업체들은 공통적으로 과도한 임금 인상과 통상임금, 낮은 생산성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르노삼성은 적어도 노사 및 생산성 문제에서는 국산차 5사 중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 르노삼성 경영진들이 향후 부산공장에서의 생산 물량 확보 등 회사의 지속가능성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배경은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국방부 공무원 출신인 프랑수아 프로보는 적어도 르노삼성에게는 명의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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