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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프라이드 시승기

  • 기사입력 2005.06.07 13:56
  • 기자명 이형진

기아자동차 프라이드가 상큼하게 재탄생했다. 디자인이나 크기에서 과거 프라이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전통의 계승이라기보다는 기아의 엔트리급이었던 리오의 후속 차종에 프라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보면 된다. 비록 컨셉트는 바뀌었지만 예전의 프라이드의 명성을 능가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으면 한다.

▼프라이드의 추억▼
1987년 탄생한 추억속의 프라이드는 포드 마쯔다 기아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판매한 경승용차로 1300cc가 주력모델이었다. 편의성은 떨어졌지만 가볍고 민첩할 뿐만 아니라 잔고장도 거의 없어 도심에서 경제적인 운송수단으로는 최고였다. 모 신문사 선배의 12년된 수동변속기 프라이드를 몰아보면 아직도 건재함이 느껴진다. 몇 가지 소모품만 갈아주면 최소한 5년은 더 생존할 것 같았다.

프라이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국내 승용차 중 가장 많은 가지 모델이 있었던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2000년 1월 단종될 때까지 3도어 4도어 5도어 모델에부터 웨건과 밴, 캔버스탑(수출용)에 이르기까지 승용차의 거의 모든 형태가 출시됐다. 이 중 3도어 모델은 90년대 초반 영종도 오프로드 레이스를 주름잡으며 한국의 모터스포츠를 태동시킨 선구자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많은 추억과 의미를 남긴 프라이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프라이드라는 이름을 다시 부여받은 이 소형차는 모든 면에서 진화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소형차의 약점인 승차감도 상당한 개선됐고 인테리어와 옵션도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모든 것이 좋아진 만큼 가격도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종합적인 주행성능은 엔트리급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 이전세대 프라이드의 아성을 깰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디자인과 인테리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곡선을 남용하지 않고 직선을 세련되게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단단해 보인다. 전조등과 리어램프 그릴도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아서 좋다. 단순해보이지만 세련된 램프 디자인과 딱 들어맞는 패널의 치합은 디자인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얼핏 보면 쏘렌토와 포드 몬데오의 라인과도 닮아 있다. 전형적인 유러피언 스타일이다.

앞뒤 오버행이 짧아 상대적으로 휠베이스가 길어 보인다. 게다가 전륜 펜더까지 제법 불룩해 스포티한 분위기도 약간 풍긴다. 저가 소형차 디자인으로는 세계시장에서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특히 해치백 모델은 프라이드의 디자인을 더욱 잘 살린다. 한국 자동차메이커의 실력은 성능에서나 디자인에서 확실히 중견급으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실용성이 돋보인다. 대시보드의 재질이 싸구려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소형차에서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다. 조금 더 고급스러움을 원하면 준중형으로 가라는 업체의 의도이다. 편한 위치에 마련된 컵홀더와 재떨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수납함은 운전자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동력성능▼
시승한 1.6CVVT SLX 자동변속기 모델은 112마력(최대토크 14.8kgm/4500rpm)에 차체중량이 1101kg. 국내 소형차 중 처음으로 무게당 마력비율이 10:1 이하인 9.8대 1를 기록했다. 2000cc급 중형차의 무게당 마력비율과 거의 비슷하다. 무게당 마력비를 볼 때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가속력은 준중형 1600cc급을 근소하게 앞서 2000cc급 중형차과 비슷하다.

가속력 측정기로 실측한 0->100km/h는 11.8초, 0-400m 통과기록은 18.3초(122km/h) 수준이다. 고속도로의 추월에 많이 쓰이는 80->120km/h 가속력은 변속기 D(드라이브) 상태에서 9.5초로 측정됐다. 참고로 쏘나타 2.0 자동변속기 모델의 기록은 0->100km/h 11.4초, 0-400m는 17.9초(128km/h)였다.

평지에서 GPS로 측정한 최고속은 178km/h였는데 계기판은 180km를 살짝 넘기고 있었다. 2000km 주행한 새 차였기 때문에 길들이기가 끝나면 순간가속력과 최고속 모두 1~2%정도는 상승하리라고 본다. 차체에 알맞은 출력 덕분에 시내운전에서 스트레스가 덜했고 고속도로에서도 100km/h로 달리다 추월을 위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아도 80~90km/h로 달리고 있는 차들을 추월할 수 있었다.

고속견인력은 150km/h까지는 그런대로 유지되다 160km/h를 넘어서면 급격히 약화된다. 그 이후는 약간 인내심을 가져야만 엔진의 파워과 공기저항이 대칭점을 이루는 최고속에 도달한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의 흐름에 맞춰 약간은 빨리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불편이 느껴지지 않는 동력성능이다.

4단 자동변속기는 4단 2500rpm에서 100km/h가 나와 가속력보다는 연비중심의 기어비 세팅이었다. 동력직결감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변속은 부드러운 편. 4단 70km/h만 넘어서면 록업클러치가 부지런히 연결돼 연비를 높이려는 모습이 보였다.

▼핸들링과 승차감▼
프라이드의 서스펜션 세팅은 소형차 중에서도 부드러운 편이다. 거친 노면을 비교적 부드럽게 여과시켜서 운전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을 줬고 장거리 운전에서 피로감도 적었다. 물론 동급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이지 중대형과의 비교는 아니다. 또 부드러운 세팅에 비해서는 코너링이나 가감속을 반복할 때 차체의 기울짐(롤링과 피칭)도 크지 않아 잘 만든 서스펜션임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차체가 가벼운 소향차일수록 승차감과 핸들링을 만족시키는 서스펜션 세팅은 힘들어진다. 부드럽게 만들면 4명이 탑승해 총중량이 증가했을 때 롤링이 너무 심해지고 조금 단단하게 세팅했다 싶으면 거친 노면에서 너무 튀어서 승차감이 엉망이 된다. 프라이드는 승차감에 무게가 주어졌지만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들 정도의 롤링과 피칭은 억제돼 보통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세팅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만큼 핸들링의 민첩성은 조금 떨어진다. 연속적으로 좌우로 차선을 변경해보면 생각보다 1/3박자 늦게 차체가 방향을 바꾼다. 어차피 고출력 스포츠세단도 아니고 그리 신경쓰이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소형차다운 날카로운 맛은 그래도 아쉽다. 현대 클릭정도의 예민함이 있었으면 프라이드의 가치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직진성은 뛰어났는데 178km/h에서도 한 손으로 스티어링휠을 잡아도 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차체가 가볍고 높이가 높아 강한 횡풍이 불 때는 차선의 절반 정도 옆으로 밀리며 약한 모습을 보였다. 즉, 차체 고유의 직진성은 좋다하더라도 횡풍에는 약하기 때문에 고속으로 서해대교나 영종대교 부산 광안대교 등 옆바람이 심한 교량구간을 곳을 지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개선이 필요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중속이상에서 스티어링을 한 채 브레이크를 밟으면 언더스티어에서 갑자기 심한 오버스티어로 바뀌는 현상이다. 전륜구동 중에서도 비교적 강한 언더스티어 세팅이었는데 70km/h를 넘어서 스티어링 휠을 약간 돌리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갑자기 앞머리가 코너의 안쪽으로 확 파고든다. 이런 현상은 코너가 아니라 스티어링을 가볍게 꺾는 차선변경 때도 나타난다.

100km/h정도 달리다 차선을 변경하는 순간 앞에 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약간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면 운전자에게 불안감을 줄 정도로 차체의 앞머리가 스티어링한 방향으로 쏠린다. 초보운전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거동이다. 반경이 짧은 급코너에서는 스티어링휠을 약간만 꺾고 브레이크를 밟는 양으로 차체의 앞머리가 코너를 파고들도록 조정하면서 운전해도 될 정도였다.

앞 뒤 휠 사이의 거리가 짧은 소형차는 모두 어느 정도 이런 현상은 가지고 있는데 프라이드는 차체의 무게중심이 높고 브레이크와 서스펜션의 세팅의 미세한 부조화로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숙성과 기타사항▼
노면소음과 바람소리는 소형차의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절제돼 있다. 연령을 더해가면 어떨지는 모르지만 실내 잡소리도 전혀 없었다. 120km/h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정도는 된다. 기존의 소형차보다 진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엔진소음은 급가속 때나 3000rpm을 넘어서면 약간 큰 편으로 기존 소형차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같은 엔진을 올린 세라토를 시승했을 때는 엔진음에 한결 부드러웠다. 확실히 등급의 차이를 넘어설 수는 없나보다.

옵션과 장비는 과거 대형차급이다. 프론트 듀얼 에어백과 사이드 에어백, 커튼 에어백 등 6개의 에어백을 적용할 수 있다. EBD-ABS와 충돌시 안전벨트를 당겨주는 프리텐셔너, 액티브 헤드레스트, 도어잠금 해제장치도 있다. 이밖에도 후방경보기와 속도감응형 오토도어록, 도난방지용 이모빌라이저 시동키, 선바이저 조명거울, 선루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다만 옵션을 많이 적용할수록 주머니는 얇아진다.

연비는 국도에서 과격한 주행과 고속도로에서 초고속 및 정속주행을 반복했을 때 10km/리터 정도였다. 얌전한 시내운전을 하면 교통상황에 따라 10~12km/리터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총평▼
신차이니 당연히 그러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출시된 국내 소형차 중에는 가장 진화했고 고급스럽다. 디자인도 역대 최고라고 생각된다. 아랫급 모닝과는 확연히 구분되고 윗급인 세라토에 근접해 있다.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먹히는 성능과 디자인이라고 판단된다. 스티어링휠을 돌린 채 브레이크를 밟은 때 나타나는 오버스티어 현상만 제외하면 가속력 승차감 핸들링 정숙성 연비 모두 엔트리급으로는 훌륭하다.

다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1400cc 기본모델이 904만원이고 1600cc 가솔린 최고급 모델은 1410만원, 1500cc 디젤 최고급 모델은 1509만원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완성도가 높음에도 아직 길거리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준중형과 가격차가 크지 않다. 곧 디젤모델(VGT)이 판매되면 초반에는 판매가 상승곡선을 그리겠지만 준중형에도 디젤이 적용되는 시점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디젤모델은 112마력으로 1.6 가솔린과 최대출력은 같지만 최대토크는 겨우 2000rpm에서 24.5kmg나 쏟아진다. 가속페달을 살짝살짝 밟아도 쉽게 가속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디젤의 성패는 소음 진동의 크기에 달려 있다. 특히 소형차에서는 디젤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과연 어떤 수준으로 나올지 기대된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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