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새 자동차가 나오면 성능이나 개성보다는 차량 크기나 엔진 배기량, 가격부터 따지는 습관이 든 것 같다. 심지어 거리에서 마주치는 자동차의 크기와 배기량으로 운전자의 재산 상태나 직위를 추측하기도 한다.
샐러리맨들은 직장 상사보다 더 큰 차 못 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드러내 놓고 비싼 차를 마음대로 탈 수 없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그래서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은 어떻게 하든 차 크기를 세분화해서 ‘내 처지’에 맞는 차를 내놓느라 갖은 아이디어를 짜낸다. 쏘나타·그랜저XG·다이너스티·오피러스 식으로 등급을 구분해서 틈새 시장의 고객을 붙잡는다.
최근 르노 삼성이 내놓은 SM7이 과연 중형차냐 대형차냐를 놓고 인터넷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왜 논란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A·B·C 단위(SEGMENT)나 SMALL·MIDDLE·UPPER MIDDLE 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충 아반떼는 준중형차, 쏘나타급이면 중형차, 에쿠스는 대형차로 부른다. 문제가 된 SM7를 분석해 보자. 잘 알다시피 일본 닛산자동차가 만든 티아나를 국내 사정에 맞도록 약간 개조한 모델이다. 티아나는 SM5의 원형인 세피로(수출명 맥시마)의 후속 모델로,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현대 쏘나타, 그랜저 XG와 경쟁한다.
따라서 SM7은 SM5의 후속 모델이지, SM5의 상위 모델은 아니다. 5마일 범퍼를 달고 티아나보다 20㎝쯤 길게 만들었다고 갑자기 대형차로 둔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차폭이 좁은 듯 느껴져 대형차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럽다. 물론 SM7만 이렇게 크기가 인위적으로 키워진 것은 아니다.
쌍용차의 체어맨은 벤츠 구형 E클래스의 밑바닥(플랫폼)을 앞뒤로 쭉 늘려 만들었고, 그랜저 XG는 EF쏘나타 뼈대 앞뒤 좌우를 약간 넓혀 크게 보이도록 고쳤다. 수입차의 베스트셀링카인 렉서스 ES 330도 도요타 캠리의 겉과 속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크기를 약간 키웠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품질과 성능이다.
SM7을 타 보면 힘센 엔진, 동급 최고 수준의 편의장비 등 대형차의 고급스러움은 느낄 수 있다. 즉, 뒷좌석에 앉아 가는 사장님용 차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즐기는 전문직 오너드라이버에 적합한 차다. SM7이 크기가 아니라 성능과 품질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