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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시승기 on the 아우토반

  • 기사입력 2005.06.07 11:00
  • 기자명 LJH
 Dream comes true.

꿈꿔오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의 행복감은 얼마나 대단한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믿겨지지 않을 만큼 행복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었다. 때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세상만사 돈으로 때우면 재미없다. 그래도 불가리 시계가 탄탄하고 멋있어 보이는 거, 수트는 아르마니가 제대로 옷빨 나오는거, 거품 목욕은 월풀 욕조에서 해야 제 맛 인거, 이런 거 누구는 몰라서 안 하나.. 한 번 질러버리면 까짓 거 시원하겠지만, 뒤따라오는 쪼들리는 생활이 싫어서 참고 있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집중시키면서 나도 제대로 만족하는 차를 꼽자면 페라리를 꼽겠지만 쉽게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많은 차들이 지구상에 존재하지만, MINI의 가치를 대체할만한 차는 단연코 없다.

예전에 한 남성잡지에서 성우 배한성씨의 MINI 애찬론을 본 적이 있다.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가끔 떠올랐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신형 MINI에 대한 호감은 별로 없었으니까.. MINI라고 함은 구형 로버 미니 쿠퍼가 진짜배기였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을 뽑아낸 것도 그렇지만, 성능과 재미를 모두 다 던져준 차는 드물다.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신형 MINI는 탈락했다. 비록 VW 뉴 비틀 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선대모델이 가지고 있는 concept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직접 렌트카를 해 본 적이 없다. 부친께 잘만 얘기하면 돈도 들이지 않고 차를 몰고 나갈 수 있었으니까..

원래 이동수단 중에서 기차를 싫어하는 필자로서는 베를린 시내에서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그런데 도심을 벗어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타야 한다. 비록 한국보다 기차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도 그게 가장 싼 방법이니까.. 하지만 '여행'을 목적으로 떠난다면 굳이 차를 빌린다. 원래 여행은 편하게 가면 재미없다. 고되고 힘이 들어야 기억에 더 많이 남고 재미있다.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창밖에 '나무, 산, 들판'만 등장하는 기차는 너무도 무료한 여행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 차를 몰고 떠나면 주변에 지나가는 많은 차종과 그 안에 탑승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같이 떠난다는 동질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떠나면 무조건적으로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 고집하는 이유가 생겼다. 굳이 내가 운전하지 않아도 고속버스를 좋아하곤 했다.

지난 라이프찌히 자동차 박람회를 구경하러 가면서 당연히 차를 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기차 값이 훨씬 싼 편이었지만 '지를 때 제대로 질러버려'라는 악마의 손길이 나를 또 다시 유혹했다.

예전에 BMW 영업소를 둘러보다가 우연치 않게 그 안에 자리한 렌트카 영업소를 발견했다. 그들의 조건은 BMW 혹은 MINI를 수리 맡길 경우, 싼 값에 차를 렌트해 준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대차 형식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내가 여기 차를 맡기지 않았어도, 그냥 일반 렌트카로 빌려도 되냐?"

그들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사실 MINI를 빌리느냐 BMW 1시리즈를 빌리느냐 고민 많이 했었다. 그런데 BMW는 후륜구동이라는 것과 핸들링이 뛰어나다는 장점만 있을 뿐, 1시리즈의 디자인은 내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FR 구동방식의 차량으로 여기저기서 휠 스핀을 일으키며 다니겠지만, 독일에서는 왠지 모르게 몸을 사리게 된다. 아우토반에서 드리프트를 할 일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굳이 생긴 게 맘에 들지도 않는데 성능만 보고 덥썩 선택하기에는 무리가 컸다. 버튼식 시동 스위치는 거부감을 들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정을 했다. FF 구동방식이라도 제대로 재미를 주는 MINI를 선택해 보자고..

예약을 하러 갔을 당시에 직원은 내게 "쿠퍼가 나올 수도 있어요"라는 희망적인 말을 해주었다.

"당연히 CD 플레이어는 있죠?"라고 물어보는 내게 "MINI에 카세트 데크가 있으면 안되져"라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뜬 눈으로 잠을 청했을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차를 받으러 갔다(눈에 핏줄이 곤두섰다). 열쇠에 붙어있는 차량 모델명에 'MINI ONE'이라고 써 있다.

"어? 쿠퍼로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그냥 ONE이에요?"라고 물어보니 "저희도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이거밖에..."


아무렴 어쩌랴.. 기분 찢어진다. 주차장에 차를 가지러 갔다.

와... 눈앞에 있는 검은색 MINI ONE이 오늘 내가 빌릴 차다. 솔직히 리모컨 키로 도어를 열 때까지 믿겨지지 않았다. 문을 열고 차 안에 들어서니 실감이 났다. '내가 MINI를 타는 구나'

어디선가 살짝 풍겨져 나오는 방향제 냄새가 기분 좋다.(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봤는데, 렌트카 회사에서 핸들에 방향제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ㅎㅎ) 계기판에는 4천km가 채 안되는 적산거리계가 차의 상태를 말해준다. 필자가 애용하는(그래봤자 몇 번 되지 않는다) Europcar라는 렌트카 회사는 항상 새차 만을 제공한다. 게다가 대학생 할인도 적용된다.

MINI는 04년 여름에 까브리오가 선보이면서 일반 모델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가 클리어 타입으로 바뀌었고 휠도 바뀌었다. 처음의 MINI는 휠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베이스 모델인 ONE임에도 호감이 가는 이유는 이렇게 바뀐 부품들 때문이다. 다만 스티어링 휠은 호감가지 않는 2스포크. 개인적으로는 3스포크 모양이 제일 멋졌는데 말이다.

전시장에서 그냥 앉아볼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열쇠를 받고 실내에 들어서니 기분이 남다르다. 도어트림과 대쉬보드 상단의 플라스틱류는 촉감이 싼 맛이 나지만, 다른 부분에서 굉장한 만족감을 안겨준다.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버튼은 굉장히 클래시컬한 느낌이다. 이곳에 윈도우 스위치도 자리잡았는데, 이것의 위치가 손에 익숙해지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가운데에는 door lock 스위치가 자리잡았다. 이거 중요하다. 사실 door lock 스위치가 도어트림에 자리잡고 있으면 도난의 위험이 크다. 도어트림에 자리잡은 스위치는 옷걸이로 쉽사리 unlock시킬 수가 있는데, 센터페시아에 자리잡으면 거의 힘들다.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

시동을 걸어볼까? 역시나 차는 시동키를 돌릴 때가 제 맛이다. 버튼으로 시동을 거는 방식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손끝으로 전해져오는 짜릿한 그 맛이 없다. 감정이 메말라있다. 센터페시아에 자리잡은 속도계에서 숨어있던 온도계와 연료계의 바늘이 튀어나온다. 와.. 죽인다. 도대체가 진정이 안 된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잠시 서서 차의 상태를 체크했다. 역시나 차의 외관 상태는 깨끗하다. 더구나 아침에 세차까지 해주었다.

신형 MINI는 필러부분이 좀 아쉬웠다. 필러를 모두 검은색으로 칠해서 차체와 지붕의 경계를 확실히 나눈 것이다. 지붕이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이 차는 도색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어서 차의 스타일링이 완성된 하나로 보인다. 그래서 더 기분 좋았다.


1600cc엔진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출력을 증명해 준다. 우리는 MINI가 고성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최고급 버젼인 cooper S에 기초한다. cooper S는 170마력이지만 노멀 상태인 one은 90마력이다. 에게~.. 그런데 단순한 수치를 따진다면 MINI의 운전대를 잡을 자격이 없다. 제원상의 수치는 181km/h까지 나온다고 한다. 속도 무제한 구간이 있는 독일의 아우토반(고속도로)에서 최고속도는 중요하다. 목적지까지의 도착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차의 중량은 앞뒤 870:730kg의 배분으로 거의 50:50수준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FF구동방식이라고 해서 앞쪽에 무게가 모두 쏠려있는 것은 아니다.

기초적인 제원이 이 정도라는 것을 언급했으니 출발해 볼까 한다.

페달의 위치가 의외로 깊숙한 편이다. 페달에 맞춰서 시트를 조절하니, 핸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 청바지를 살 때와 함께 이럴 때 다리가 짧은 게 가장 억울하다. 근래의 차종들은 운전석에서 본네트의 길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데, 그건 둘째치고 대쉬보드가 좀 높다. 그래서 의자의 높이를 높였더니 버스를 탄 기분이다. 속도감을 더 느끼려면 시트 포지션은 낮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낮췄다. 솔직히 드라이빙 포지션은 그렇게 편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뭐.. 과거의 로버 미니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신문을 펼치고 앉은 자세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것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1km가 채 되지 않는 시내 주행구간에서 최대한 무엇인가를 느껴보려고 많이 애썼다. 토크가 그렇게 센 편은 아니라서 신호 대기 때 정신나간 듯이 치고 나가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꾸준히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서 2단으로 변속할 때에는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브레이크가 꽤나 민감하다. 살짝만 발을 갖다대어도 즉각 반응이 온다. 생각 없이 조금 세게 밟았는데, 룸미러에 무엇인가가 갑자기 꽉 차온다. 뒷차가 놀래서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빵빵대지 않는 걸보니 아마 MINI라서 너그러이 봐 준 것 같다. 괜히 심장이 막 벌렁벌렁..

음악을 크게 틀지도 않았는데 몸이 자꾸 들썩들썩 거린다. 왜 이러지?

서스펜션이 굉장히 딱딱한 편이다. 일반 승용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승차감이다. 아마 투스카니 엘리사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투스카니를 타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 감을 잊어버렸다. '딱딱한걸..'이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 순간,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램프가 눈에 보였다. 좌회전 신호였는데 10여 미터 앞에서 노란색 불로 바뀌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며 가속페달을 좀 더 밟고 핸들을 꺾었다. 거의 개념을 상실한 순간이었다. 의외로.. 무리 없이, 차가 도로의 요철에 살짝 통통통 튀면서 램프로 빨려 들어가듯이 진입했다. 오케이.. 이거야. 으이~

평일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도심내의 정체는 예상했던 바였다.

담배를 하나 피우고 싶었다. 윈도우 스위치를 대충 감으로 찾다가 실수로 ASC(ESP와 비슷한 기능)스위치도 꺼보고.. 어쨌든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물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이유야 많았을 것이다. MINI안에서 흘러나오는 댄스음악이 청각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고, 그 안에 양아치처럼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 동양인이 시각 신경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번 렌터카에는 차량 후미에 렌터카 회사의 스티커가 없어서 더욱 더 내 차같이 행동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더 신기했을 것이다. '저놈이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MINI를 끌고 다닐까'라고..

센터페시아 아래쪽에는 재떨이와 두 개의 수납함이 자리 잡았다. 재떨이의 크기는 나름대로 넉넉한 편이었고, 보기에는 엉성해 보여도 뚜껑을 닫으면 담배냄새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옆에는 하나의 컵홀더가 있고(차량 구입 시에 재떨이를 제외한다면 컵 홀더가 두 개가 될 듯) 안 쪽으로는 선글라스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안쪽에 자리한 수납공간은 볼보 S60에서 보던 센터페시아와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싶은데, 우려와는 달리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그 안에서 물건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당연한 거다.

담배를 피우다가 핸들에 올려진 손이 없어서 보니, 오른손이 항상 기어노브 위에 올려져 있었다. 골프공 보다 조금 큰 크기의 그것은, 촉감이 매우 좋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어루만지고 있었다. 오디오 데크는 약간의 불만이 있었다. 사용하기에는 썩 편리하지만은 않다. 전원 버튼을 돌리면 볼륨 조절도 가능한데, 크기가 작아서 보지 않고 작동하기에는 조금 버겁다. 아마도 버튼 류가 큼지막한 한국차에 익숙해진 습관일 것이다.

CD를 넣으면 트랙번호만이 표시될 뿐, 해당 트랙의 시간이 표시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게다가 빨리 감기 기능인 SEEK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1~2초 후에 반응한다. 그냥, CD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들어야겠다. CD를 빼는 것 또한 고심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봐도 'eject'라는 표시가 없는 거다. 그래서 CD의 1번 노래를 다시 한 번 더 들으면서 생각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그래.. '<ㅣ>' 버튼을 동시에 눌러보자. 아싸~ 나온다. 예전에 좋다고 끌고 다녔던 봉고 트럭이 그랬다. 물론 그건 카세트 데크였지만..

도어 트림에 자리한 트위터(고음을 담당하는 스피커)는 도어그립과 더불어 굉장히 앙증맞다. 그런데 위치를 운전석 쪽으로 좀 더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소리가 앞쪽으로 새어나가는 것 같다. 손바닥을 대었다가 떼었다가 별 짓을 다 해보았는데 생각은 변함 없다.
이곳의 TV에서는 MINI의 광고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처음에 굉장히 재미있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을 보다가 보면 식상해 진다. 그러면 곧 다른 광고로 시청자에게 다가선다. 항상 메시지는 always fun, with MINI you can be funny라는 식이다. 그 때문에 복장에도 나름대로는 신경을 썼다. 한여름도 아닌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운전을 했다. 무지하게 추웠다. 그래서 에어컨 스위치를 '외부 송풍'으로 돌려놓고 따뜻한 쪽으로 돌려놨다. 가끔 초원 쪽을 지날 때면 한국에서 맡던 구수한 응아 냄새도 차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 곤욕이었다.

핸들 앞에 있어야 할 속도계는 센터페시아로 들어가 버리고, RPM게이지만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속도계가 가운데에 있으면 눈에 더 잘 들어온다는 말,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RPM만을 보고 있으니까 생각 없이 밟게 되는 거다. 그렇게 약 30여분이 지났을까.. 다른 고속도로와의 교차 지점에 들어섰다. 램프에 진입하는 순간 80이라는 표지판이 스쳐지나갔다. '80이겠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있던 차들이 모두 내 뒤로 흘러가는 것이다.

어? 이 기분은... 어디선가 경험한 듯한..

펑!
카메라..

사실 그 위치에 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몇 번 그곳을 지나가면서 내 앞에서 찍히는 차를 보아오면서 '낄낄낄.. 빙~신'이라고 마구 웃어댔는데, 이번에는 내가 찍힌 것이다. 한국에서야 뭐, 필자의 부친이 워낙에 사진 촬영을 좋아하셔서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와도 '니가 찍혔냐 내가 찍혔냐'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딱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근데 독일에서 처음 찍혀버리니 기분이 참 더럽기도 하고, 겁도 났다. 얼마짜리일까.. 속도를 파~악 줄이고 규정 속도에 맞춰서 갔다. 담배 하나 또 물었다. 그제야 속도를 내면서 지나가던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면서 '나도 이해한다'라는 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향지시등 스위치에 트립 컴퓨터의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RPM게이지에는 트립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는데 평균 속도, 주행할 수 있는 거리, 연비, 속도가 디지털로 표시된다.

애초에 이걸 유심히 봤더라면 이곳에 속도계를 표시해 놓고 달렸을 텐데.. "ㅆㅣ..... 이게 왜 이제 보이는 거냐고.."

아무튼.. 좋았던 기분, 사진 한 방에 완전히 잡쳐버렸다. 담배를 부벼끄는데 속도 무제한 표지판이 나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냅다 달리겠는데, 오른발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1차로 에서 내지르는 몇 대의 차량을 보고 쫓아갔다.

2차로 에서 주행하다가 4단 기어로 내리고 부아앙~ 밟은 후에 1차도로 진입했다(참고로 MINI one은 5단 수동기어). 110~120km/h를 넘어가면서부터 엔진 소음이 커지고 140km/h를 넘어가니 바람 가르는 소리가 많이 커진다. 160까지는 무리 없이 나오는 편이다. 계기판 수치로는 180을 넘어서자 많이 부친다. 191까지 표시되었지만, 그게 아마도 실제 속도로는 181이 아닐까 싶다.

룸미러로 불빛이 하나 보인다. 얼른 2차도로 차선변경을 했다. 쐐애액~ 아이.. .. 도대체 니네들은 몇으로 놓고 달리는 거야.. 꼭 저렇게 질러나가는 차들을 보면 아우디 왜건 아니면 BMW이다. 모두 250km/h에서 속도 제한이 걸리니, 그 정도였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페라리나 포르쉐는 만나보는 일은 없었으나 아우디 RS시리즈들이 몇 대가 보였다. 차체에는 거의 크롬 도금이 없고, 육중한 크기의 휠이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게다가 후미에는 엠블럼조차 없었다. 딴에는 쫓아가는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3차로 에서 기름값 아끼느라 정속 주행을 하고 있는 차보다야 빨랐으니 됐다.

그렇게 라이프찌히에 도착했다. 딱지 끊긴 것 때문에 몸 사리며 밟았기 때문에 예정했던 도착시간보다 조금 더 초과되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줄을 보니 각양 각색의 차가 몰렸다. 평일이다 보니 멀쩡한 사람은 오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칼로스에 5명이 꽉 차서 오는 차도 있었고, 미국 머슬카를 끌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나도 좀 튀지..'라는 생각에 휠 스핀도 일으키며 주차를 했다.

주차권을 발급하던 직원은 "MINI? cool!"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주었다. 그것에 어깨 한 번 들썩거리며 화답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문을 잠가야 되는데 못 찾겠는거다.

열쇠에는 도어와 트렁크 열림 스위치만이 표시되어 있고, 잠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다. 뭘까.. 에라 모르겠다. 가운데에 MINI엠블럼을 눌러봤더니 문이 잠긴다. ㅇㅎㅎ 오늘 의외로 힘들다.

르노부스에서 에스파스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직원과 농담 따먹다가 물어봤다.

"여기 오는 길에 카메라에 찍혔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10~20km/h 초과한 것 같애. 얼마나 나올까?"

"그거.. 얼마 안 할 꺼야. 뭐 고속도로에서 그랬으니 벌점도 없겠네. 마음 편하게 먹어."

그렇게 전시장을 관람하다가 MINI부스를 찾았다. 직원과 얘기를 하다가 "제원상의 속도는 181인데, 나 오늘 191이 나오더라. 그거 안전을 위한 고려냐?"라고 물어봤다.

"그렇지. 모든 차가 다 그렇지.."라더니 갑자기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물어본다. "무슨 차로 밟았는데?"

"당신네들 MINI로.. 렌트카했거든"이라며 대답했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실 우리가 이곳에서 시승 행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도심에서 191을 밟았다는 줄 알고 놀랬지 뭐야"라면서 웃는다.

"그나저나.. 나 오늘 딱지 끊겼으니까.. 뭔가 특별한 기념품을 받아가야겠다"라면서 졸라댔다. 그래서 가지가지 얻었다. ㅎㅎㅎ 성공~~~ ^^V

폐장시간인 오후 6시에 무거운 쇼핑백을 한 보따리 안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150L의 트렁크 공간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쇼핑백 4개를 세워서 넣으니 여유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짐이라고 해봤자 가방 하나인데 뭐.. 뒷좌석에 던져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주차장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미니를 보니 더 멋졌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둘렀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문득, 아까 르노부스에서 직원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려봤다. '벌금 얼마 안될 꺼야..' 에라.. 설마 또 찍히겠냐.. 이번에는 표지판 제대로 보고 가야지.

개념 없이 질렀다. 뭐 속도 무제한 구간이라는 멍석도 깔아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야 없다. 기름 값은 어차피 감수하고 차를 빌렸으니까.. ㅇㅎㅎ

대부분의 유럽산 차량들은 헤드라이트 스위치가 대쉬보드에 붙어 있다. 하지만 미니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보는 차량과 같은 구조이다. 그래서 작동하기에 좀 더 수월했다.

운전석 머리 쪽에는 조수석이나 뒷좌석처럼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선바이져가 하나 붙어 있다. 노을이 질 때 옆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막아내기에 무척 편하다. 앞쪽에 있는 선바이져를 굳이 빼서 돌려야 할 수고를 덜어주니 말이다. 앞쪽에 달려있는 선바이져에는 당연히 운전석에도 거울이 달려있고, 조명도 부착되어 있다. 신호 대기에서 화장을 고치는 한국 여자들이 좋아라할 것 같다.

솔직히 140km/h가 넘어가면 바람 가르는 소리가 크기 때문에 오디오의 볼륨을 더 높여야 한다. 차의 속도가 빨라지면 자동으로 볼륨도 높아지지만, 보통 이상으로 올려야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마구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베를린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는 2시간 10분이 걸렸던 길이, 오는 길에는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작년에도 1시간 30분 정도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그 때는 정말로 개념이 없었나보다. 1년 전에는 1100cc 오펠 코르사를 빌렸으니 말이다(160까지 나왔다).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았을 때 만족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조수석에 앉으면 그런 기분은 더 하다. '조금만 움직이면 운전석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리고 어느 차를 타던지 '얻어 탄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각 회사의 기함 모델은 제외). 근데 MINI는 좀 달랐다. 뒷좌석에 친구들도 앉히면서 선심도 쓰고 싶고, 아니 내가 뒷좌석에 앉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런 느낌..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3명의 친구들이 더 있다면 기쁨은 3배가되었을 것이다.

MINI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주변의 몇몇 지인 들은 내가 MINI를 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을 만나서 밤에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애석하게도 남자다 ㅎㅎ). 사실 차를 계속 몰아보고 싶은 욕구도 강했다.

핏줄이 BMW인 탓인지 밤에 실내를 보면 온통 붉은색 조명뿐이다. 원래 빨간색이 어둠 속에서 눈에 가장 잘 띈다. 그렇지만 혼란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밤에 보니 실내의 도어 그립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다니.. 룸미러 쪽에 자리한 실내 조명에서도 은은한 빛이 발하고 있었다. 이걸 보면서 생각을 했다. 넌 내가 꼭 산다. 얼마면 돼?

낮에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밤에 하나 발견되었다. 바로 운전석에서 보는 시야가 좁다는 것. 앞으로 쭉 뻗어있는 앞유리창은 그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위쪽으로의 시야가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단적으로 신호대기에 서 있으면,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밖에서 보면 무지하게 웃겼을 것이다). 신호등을 늦게 보고 출발해도 뒤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MINI이기에 용서되지 않았을까.. ㅎㅎ

정말이지 피곤한 것을 잊고 밤새도록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녔다. 왠지 오늘밤은 그냥 보내기 싫은 거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같이 밤을 지새우고 싶어도 집에 보내줘야 하지만, MINI는 정말로 보내기 싫었다.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해.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하면 그녀가 "병~신. 오늘이 기회인데.."라고 말할 것 같아서 그랬나보다. 그래서 밤을 불태워보기로 마음먹었다.

MINI를 세워놓고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가보았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제대로 건진 것이 몇 장 없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 '저 녀석을 내일 반납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눈을 감아도 뭔가가 자꾸 아련하게 남는 거다.

몇 시간을 잤을까.. 워낙에 이른 아침에 차를 빌렸기 때문에 반납 또한 그 시간에 맞춰서 갖다줘야 했다. 어제보다 더 충혈된 눈을 비비며 즐거운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아무런 상처 없이 MINI는 하룻밤을 집 앞에서 보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본네트를 못 열어봤다. 운전석에 앉아서 왼쪽 발 근처를 이리저리 더듬는데 뭔가 잡히는 게 없다. 이 스위치는 또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뭔가 움직일 만한 플라스틱류를 다 건드려보아도 도대체가 본네트는 열리지 않는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아! 설명서.. 그렇다. 우리는 전자제품을 사면 앉은자리에서 사용설명서를 다 읽어버리지만, 자동차는 거의 읽어본 기억이 없다. 그게 문제였다. 글로브 박스를 열어보니 설명서가 웃으면서 나를 반기고 있다. 찾아보니 조수석 쪽에 있다고 한다.. 뭐야.. 왜 본네트 개폐 스위치가 조수석 쪽에 있어.. --a

본네트를 열으니 헤드램프까지 딸려서 올라간다. 솔직히 이렇게 엔진룸을 열고 팔짱을 끼면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른다. ㅋㅋㅋ 그저 '음.. 독특하군'이라는 생각만 나오지, 다른 생각은 전혀 없다. 사실 고장이 난다고 해도 여유 있다. 독일내의 MINI서비스 차량은 BMW X5이니까.. ㅎㅎ
반납하러 가는 길에 어제 받은 CD를 넣었다. 메르체데스 벤츠 A클래스의 CF삽입 곡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Hello라는 노래. 사람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MINI안에서 A클래스의 음악이라.. --a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얼마를 넣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408km를 주행하면서 38L정도 주유한 것 같다.. 뭐 대략 1L당 10km정도가 아닐까 싶다. 독일에서 내가 몰아봤던 차들은 대부분 10정도의 연비가 나왔다. 정속주행에서는 훨씬 더 좋은 연비가 나오지만, 어제의 나는 좀 과했다.

너무 사랑하기에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심정을 이해하는가. 그 기분을 느낀 사람이라면 MINI를 반납하는 필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비록 그 전까지 MINI는 나의 드림카 혹은 이상형이 아니었어도, 어제 단 하루로 인해서 나의 드림카는 바뀌었다. 포르쉐 911을 지워버리고 MINI를 썼으니 말이다. MINI는 포르쉐보다 좀 더 현실적이 될 수가 있다. 가격도 상대적으로는 훨씬 저렴한 편이고 구입하기까지 큰 부담도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몰고 다니기에는 승차 감이 좀 딱딱한 편이지만 그래도 항상 재미를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
MINI는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아련한 여운만을 남기고 떠나갔다.

출처: 동아닷컴 게시판의 LJH 회원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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