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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쿠퍼의 즐거움을 맛보다

  • 기사입력 2005.06.03 18:23
  • 기자명 이형진
한 후배는 2월말 국내 출시된 미니 쿠퍼를 보고 “구입 5개년 계획을 세우겠다”고 하더군요. 이 차를 사는게 무슨 70년대 경제개발도 아니고, 그 후배가 이 차의 품질이나 성능을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것도 아닐텐데 그 어조가 사뭇 확고해 보였습니다. 후배가 이 차를 갖고 싶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보기만해도 즐겁잖아요!(It’s fun!)”

여기에서 “5년을 모아 사느니, 재테크에나 집중해라” “이 가격이면 이런저런 성능의 좋은 차를 살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라고 설명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겁고 우울한 회색도시에서 자동차 좌석에 앉을 때마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건 정말 대단한 이벤트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차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가치는 충분한 것이겠지요.

60년대 영국 미니카의 향수에 BMW가 손본 각종 전자·편의장비를 더한 이 차는 폴크스바겐 뉴 비틀과 함께 ‘클래식카의 현대적 복원’에 멋지게 성공한 사례로 단연 돋보입니다. 시판된지 3년이 넘었지만 전세계에 구입 대기자들이 밀려있고, 판매를 이제 시작한 국내에서도 3000만원대 소형차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모자랄 정도라고 합니다. 미니 쿠퍼의 원조는 1959년 영국서 태어나 20세기 마지막까지 생산됐는데요. 미니 쿠퍼라는 이름도 구형 미니의 스포츠 버전에 해당하는 모델에서 따온 것입니다.

2003년 봄 서울 장안평 중고차시장에서 1994년식 구형 미니를 몰아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고차 가격이 1400만원쯤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품질이나 크기나 연식으로 볼때 만만치 않은 가격이더군요. 1.3리터 엔진은 거의 원동기 수준으로 달달거리고, 스티어링휠은 너무 빡빡해서 팔힘이 저절로 길러질 것 같은 분위기더군요. 일반 스프링 서스펜션이 아닌 고무 서스펜션이라 승차감이 무척 특이합니다. 통통 튀는 승차감이 마치 레이싱카트 타는듯 즐거웠습니다. 작은 차인데도 코너링이 매섭습니다. 4단 수동미션 휘젓는 맛도 좋았고요.

이번에 시승한 미니 쿠퍼는 오리지널 미니와 컨셉만 같을뿐 완전히 다른 차라고 보셔도 됩니다. 1.6리터 115마력짜리 엔진을 얹어 가속이 경쾌하며,(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 10초대) 최고시속도 185Km에 달합니다. 전체적인 품질감과 동력성능 편의장비 등은 구형 미니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편입니다. 핸들링이 상당히 날카로워 그 작은 차체가 스티어링휠 꺾는대로 매섭게 움직입니다. 경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운전 재미가 뛰어납니다. 무단변속기인 CVT가 장착돼 있어, 자동모드에서는 엔진회전수 상승 없이 속도만 꾸준히 올라갑니다. 변속충격이 없어 부드럽긴 한데, 속도 올라가는 맛이 안나다 보니 코너링에서 느꼈던 스포츠주행감이 미션 때문에 반감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6단 수동변속모드도 가능합니다만, 진짜 6단 수동 변속레버를 조작하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반응이 좀 밋밋한 편입니다. 동력손실이 느껴진다는 것은 아닌데, CVT 특유의 뜨뜻미지근한 가속감은 미니 쿠퍼도 예외가 아니더군요. 미니쿠퍼의 상급 모델이 미니 쿠퍼 S라면 동령성능도 170마력으로 훨씬 뛰어나고 6단 자동 미션이 들어가서 가속하는 맛은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미니 쿠퍼의 연비는 리터당 13km 수준으로 국내 1.6리터 자동미션 준준형세단 수준과 비슷한 정도입니다.

서스펜션이 단단한데다 소형차인데도 타이어 안쪽 지름이 16인치(국산 중형차 사이즈)에 광폭이라, 급코너링이나 고속주행시 안정감은 소형차 수준을 뛰어넘습니다. 전륜구동이기 때문에 직접비교는 어렵지만, 조금 과장하면 3시리즈의 핸들링감각을 좀더 가볍게 세팅해 놓은 느낌으로 보셔도 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승차감은 딱딱한 편입니다. 귀엽고 깜찍한 외모에 빠져 구입한 여성운전자라면 과속방지턱 넘을 때마다 엉덩이가 아플지 모르겠습니다. BMW가 만들었다지만, 조립품질이 BMW 3시리즈 수준보다는 한단계 떨어집니다. 반면에 차폭이 1688mm로 현대 클릭보다도 넓기 때문에, 작아 보이는 차체에 비해 실내공간은 비좁지 않습니다. 앞쪽 2명은 여유롭게 탈 수 있고, 뒤쪽에도 성인 2명이 아쉬운대로 탈 수 있는 공간은 나옵니다. CD플레이어 장착 오디오는 사운드가 기대 이상으로 좋습니다. 팝·메탈·재즈 할 것 없이 일단 상당히 강력하게 때려주는 맛이 대단해서, 별도의 튜닝이 필요없을 정도라 보여집니다. 블랙·메탈 칼러를 조화시킨 실내와 도어는 부분부분이 모던한 예술작품 보는 느낌입니다. 스티어링휠 안쪽에 탁상시계처럼 생긴 속도계와 RPM게이지가 있고요. 대시보드 중앙부 원통형 게이지 안에는 엔진온도계·오일압력계·연료게이지 등이 모여있습니다. 이 외에 파워윈도우 등 조작스위치류가 센터페시아 아래쪽에 무슨 60년대 똑닥이 버튼 같은 스타일로 아기자기하게 꾸져 있는데요. 역시 디자인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뒤쪽 짐칸은 상당히 작습니다. 큰 배낭 한개 넣으면 끝일 것 같습니다.지붕 대부분은 유리로 돼 있고, 앞쪽만 전동식 선루프가 있습니다. 선루프 면적은 꽤 넓은 편입니다.

미니 쿠퍼의 값은 3300만원. 대형 선루프 등 옵션 장착과 최근 달러환율 하락, 관세 등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1만7000달러(약 1700만원) 일본 249만엔(약 2500만원)에 비해 다소 비싼 편입니다. 미니 쿠퍼보다 상급모델인 쿠퍼 S의 경우는 3800만원입니다. 미니 쿠퍼 아랫급으로 미니 기본모델에 해당하는 미니 원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습니다. 귀여운 맛에 타는 미니 컨셉에는 오히려 출력이 높지 않고 가격이 저렴한 미니 원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고급차로 팔아야 하는 국내 사정에서는 메이커 측이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듯 싶습니다. 조금 아쉽습니다. 미니 쿠퍼는 압도적인 파워나 날카로운 코너링보다는 삶의 재미와 여유, 그리고 즐거운 운전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차이기 때문이지요.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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