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파산신청 크라이슬러, '영욕의 84년'

  • 기사입력 2009.05.02 14:17
  • 기자명 이상원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크라이슬러는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미국 파산법 제11조에 의거한 자발적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연일 관심을 받아왔던 빅3중 첫번째 희생자가 탄생했다.
 
크라이슬러는 미국 자동차산업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녹아있는 파란 만장한 역사를 걸어 왔다.
 
한 때 최고의 경영자로 불렸던 리 아이어코카회장(84)의 리더속에 오일쇼크 후 도산 직전에서 극적으로 회생했지만 2007년 독일 다임러 벤츠와의 사상 최대규모의 합병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데다 원유가 폭등과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세계적인 불황으로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크라이슬러는 일단 파산이후 이탈리아 피아트사와의 제휴를 통해 두번째 회생을 시도하게 되지만 여전히 앞날은 안개속이다.
 
크라이슬러는 빅3 중 가장 젊고 규모가 작으며, 가장 불안정한 자동차업체로 평가돼 왔다.
 
1925년 월터 크라이슬러가 설립한 크라이슬러는 대중차시대를 연 포드 모터, 세계 자동차업계 선두를 장기간 독주해 온 제너럴 모터스(GM)에 비해 규모나 전통면에서 크게 뒤떨어져 그만큼 위험요소도 많아 파란의 세월을 걸어왔다.
 
크라이슬러의 첫 번째 경영위기는 1970년대 후반, 두 번의 오일쇼크와 이후 원유가격의 급상승, 이에더해 일본산 자동차의 공세로 점유율이 폭락하면서 자금난에 빠졌다.
 
지난 78년에는 포드사장으로 헨리포드 2세와 대립하다가 사임한 리 아이어코카를 새 사장으로 영입, 79년 지미카터 행정부로부터 15억달러의 연방융자금을 지원받는데 성공했다.
 
그 자금을 기반으로 전륜구동형 컴팩트카 K카와 미니밴 캐러밴 등이 빅 히트를 치면서 실적이 빠르게 회복, 정부의 융자금도 모두 갚았으며 아이어코카사장은 일약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관련 서적들은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었다. 
 
87년에는 프랑스 르노자동차그룹 산하 짚브랜드를 보유했던 AMC를 인수했고 90년대 중반에는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의 높은 자동차 메이커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대서양을 뛰어넘는 세기의 대합병이 또다시 위기를 불러왔다. 98년 다임러 벤츠에 인수, 다임러크라이슬러로 재탄생했지만 다임러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미.독일간 기업문화 차이로 벽이 생기면서 회사의 사기가 저하, 경영위기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결국 2007년 다임러 벤츠는 크라이슬러주식의 80%를 미국 투자회사 서베라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에 매각했으며 투자펀드에 의한 회사재건이 추진되던 도중 원유가 급상승, 저소득자 전용 고금리형 주택융자(서브프라임 론)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판매가 급감했다.
 
여기에 지난해 9월 벌어진 리만 쇼크를 시발점으로 한 세계적인 불황으로 다시 경영위기에 빠졌고 지난해말부터 지금까지 미국정부로부터 40억달러의 융자를 받고 있지만 단독 생존은 무리라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파산을 맞게됐다.
 
크라이슬러는 GM, 포드와 함께  20 세기의 대부분을 통해서 미국 경제를 견인해 왔으며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부를 창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평가했다.
 
이번 파산신청으로 수 세대 동안 크라이슬러에 의존해 온 해당주민이나 종업원들 사이에는  패닉도 안도의 마음도 없다.
 
 확실한  것은 좀 더 큰 변화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과연 크라이슬러가 파산후 피아트와의 제휴를 통한 새로운 크라이슬러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